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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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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흑백요리사2를 봤다. 1보다는 재밌진 않지만 나름 재밌었다. 다만 1보다 재밌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건 게임 디자인 (당연한 얘기지만 리얼리티 프로의 기획은 곧 게임 디자인이다.) 의 문제일까? 1의 방식을 너무 답습하거나, 변경점이 충분치 않거나 부적절했을까? 그런 부분도 없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재료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출연하는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1이나 2나 (요리실력/편집실력)은 다들 뛰어난 것 같다. 1보다는 재미있는 서사가 나타날 수 있는 상황, 캐릭터가 부족할 뿐이다. 1에서 초반 빵빵 터트리는 재미는 (재료/캐릭터)가 제철이라서도 있었던 것 같다. 실력이 비슷하면 재료에서 차이가 나는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리얼리티 프로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최종결과물의 차이이다. TV는 더 이상 변경할 수 없는 영상물이고, 게임은 플레이어에 의해 충분히 변경되는 테마파크의 입장권에 가깝다 (물론 어떤 게임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게임쪽이 플레이어의 책임이 강해진 대신 작가의 어깨가 가벼울 수 있다.

리얼리티 프로를 가장 잘 만드는 방법은, 좋은 상황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디자인도 중요하고, 잘 뽑아내는 편집도 중요하지만, 많은 출연자들을 많이 돌려볼 수 있는 저예산과 포맷이 아닐까? Taskmaster가 재밌는 이유인 것 같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TV 컨텐츠로 따진다면 최근엔 써져 있는 이야기보다는 리얼리티를 많이 본 것 같다. 한국어로 된 컨텐츠는 더 그렇고.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는 것 보면, 다들 좋아하는 것 같다. 재밌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왜 재밌을까? 여러 종류의 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서가 아닐까? 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가 모르는 다양한 종류의 (물론 주류문화에서 인정되는) 사람을 시각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게 재밌는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을 아는 것은 세계를 아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유의미한 세계의 부분집합은 인간이니까.

그리고 이렇게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일을 하는 인간과 그들을 보는 인간들. 어떻게 서있는지, 어떤 자세로 보는지, 어떤 표정으로 하는지, 어떤 악센트로 말하는지, 차마 다 한번에 분석할 수는 없지만 분명 뇌에 들어오는 순간들. 예를 들면, 손종원이 평소 한국어로 말하다가 영어로 대화할 때의 악센트나 말투는, 손종원이라는 캐릭터나 그가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남이 설명해주려면 5분 걸릴 내용을 5초 내에 효율적으로 알려준다. 대본으로 이렇게 쓰려면 대가급의 실력이 필요하다.

지금 생각했을때 두개의 게임이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한다. 하나는 역전재판1이다. 캐릭터의 대사나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도 이런 방식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나는 것은 이 것이다. 작중 카루마 검사가 어깨를 꽉 잡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건 카루마의 성격도 말해주면서 (신경질적임), 작 중 복선이 되기도 한다. 미츠루기와 카르마 메이 (2편이지만)도 비슷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이건 그들의 관계를 보여준다. 미츠루기와 카루마 검사, 카르마 메이의 복장 또한 비슷하다. 다른 하나는 디스코 엘리시움이다. 디스코의 캐릭터 묘사에 대해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속편에 대하여

게임은 속편이 가장 환영받는 매체일 것이다. 당연한 것이, 속편이 대부분 더 재밌는 매체기 때문이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게임플레이가 경험의 중요한 부분인 대부분의 게임에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압박이 덜하다. 또 이런 게임들은 전작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재미 요소를 추가하는 iteration (반복(긍정적))이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기술이 중요한 매체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 또한 기여를 한다. 플레이어에게 전작의 신선함을 주지 못하더라도, 발전한 게임플레이가 더 큰 재미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영화나 만화 같은 경우 기획 단계에서 부터 결정된 경우가 아닌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끝난 이야기에, 이미 작별을 한 캐릭터들을 굳이 꺼냈다면 더 재밌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이다. 궁금증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감정 중 하나이다. 덜 궁금한 얘기가 더 재밌긴 힘드니까.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이야기에 작가의 권한이 더 많을 수록 속편의 기대치가 떨어진다. 왜냐하면 작가의 권한이 높은 매체는, 작가가 얼마나 재밌는 사건을 생각하고, 잘 조합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반대로 대부분의 게임은 작가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행동이 강하게 이야기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리얼리티 프로 (예능? 리얼 예능? 서바이벌?) 는 드라마보다는 게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 캐스팅 등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이야기는 출연자의 주체성에 달려있다. 다만 게임과 달리, 작가는 후에 편집이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찾아내고 보여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 게임의 작가는 오직 시간상 앞으로 플레이어가 무엇을 할 지 예측밖에 할 수 없고, 리얼리티 프로의 작가는 시간상 뒤로 이야기를 발굴해낸다. 아니면 편집과 비유 가능한 게임만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있을까?